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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인터뷰] 19. 김지혜 외화의 여왕, 학교에 성우교실을 열다

 

 

 

원조 성우 덕후는 바로 나야!”

 

진정 좋아하던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굴곡이 있어도 내가 바라던 길을 걷는데 여행이 즐거울 수 밖에. 열아홉번째 만난 사람의 삶은 그래서 탐이 난다.

그간 열여덟 분의 성우를 만났다. 처음부터 성우를 목표한 사람도 있었고, 연기가 좋아 여러 길을 고르다 이리 닿은 이도 있었다. DJ를 준비하다 성우로 진로변경한 이도 봤고, 운명처럼 시험 직전 급류를 탔던 사람도, 가정이 있는 몸으로 험로에 도전해 이른 이도 있었다. 모두 청춘에 승부를 걸었던 승자지만, 이번 사람은 아예 어릴 적부터 장래 희망이 성우였던지라 또 남다르다. 아홉 살 때 이미 진로를 결정지었던 열아홉번째 주자, 외화의 여왕 김지혜를 소개한다.

 

 

 

김지혜

1999 KBS 27기 입사

1997 대교방송 3기

2001 KBS 성우연기대상 신인연기상

 

대표작 애니메이션

거북이특공대Z – 에이프릴 (SBS)

구름빵 – 홍시 (KBS)

데스노트 – 웨디, 유미(대원방송)

마징카이저 – 애리(대원방송)

별의목소리 – 나가미네 미카코(KBS)

베리베리 뮤우뮤우 – 자루비 (SBS)

블랙잭 OVA – 피노코, 카티나(KBS)

쪽빛보다 푸르게 – 미나즈키 타에코, 우즈메(대원방송)

풀메탈패닉! - 안수란 (대원방송)

환상마전 최유기 – 이린, 옥면공주 (대원방송, 투니버스)

드래곤볼Z 신들의전쟁 – 부르마 (극장판)

바다가 들린다 – 무토 리카코 (대원방송)

원피스 – 벨메일 (KBS)

외화

닥터후 – 에이미 폰드 (KBS)

첨밀밀 – 이교(장만옥) (KBS)

아이언맨1,2 – 페퍼 포츠(기네스 펠트로) (KBS)

트랩트 – 에비(다코타 패닝) (KBS)

수어사이드 스쿼드 – 할리퀸(기내더빙)

이니셜D – 모기 나츠키

무간도1,3 – 이심아(진혜림)(KBS)

 

보이스 투 보이스 방송연기교육원 대표

 

 

‘1999 KBS 황금세대’에서 외화의 여왕으로 어느덧 20년

 

닥터후와 에이미가 시간여행을 하던 저 큰 전화부스에 우리도 즐겁게 올라 보자. 성우 김지혜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변곡점을 한 곳씩 들러가며 오늘 인터뷰를 이어간다. 닥터의 친절하지 못한 성격까지 닮으려 한건 아니나 시간순은 뒤죽박죽이다.

여행 전 2019년 지금 모습을 스캔한다. ‘영포티 세대’. 미니스커트를 입어도 위화감 없다는 오늘날 40대가 앞에 있다. 그럼 처음으로 찾아갈 시점, 성우에게 있어선 두 번째 출생해라 할 수 있는 입사 때는 어떤 모습일까.

문을 열고 나가보니 황금 세대가 마중나와 있다. 1999, 성우 역사를 꿰고 있는 매니아라면 !’할 것이다. 맞다. 그녀는 전설의 KBS 27기 기수다. 사성웅(헐크), 소연(엘사), 안용욱(울트라맨 가이아), 양석정(블랙잭), 윤세웅(놀란로스-리벤지), 이현주(도라에몽-비실이) 등 현존하는 1급 성우들이 동기다. 이 골든 제네레이션 중 그녀는 외화의 여왕이란 칭호가 아깝지 않을 족적을 남겼다. 위를 보라. 그동안 대표작을 열거함에 있어 외화 파트가 이만큼 충실한 적은 처음이다.

외화가 소강국면에 접어든 현재 셜록과 더불어 KBS 외화의 양 축인 닥터후 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히로인 에이미 폰드, 아이언맨의 안방마님이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당당한 주역인 페퍼포츠 등 금발 벽안의 장신 미녀는 그녀의 전문분야다. 뿐만 아니라 첨밀밀 마지막장면에서 여명과 함께 운명적으로 재회하고 웃던 장만옥, 무간도 시리즈의 진혜림 등 시대를 풍미한 동양 미인들도 그녀 몫이었다. 아역으로 다코타 패닝도 맡았다!

TV에선 뜸해도 기내더빙 외화는 살아있다. 비행기를 타면 자주 만날 수 있는 목소리. 특히 키아나 나이틀리는 그녀가 전담하는 배우다.

 

외화가 난 제일 재밌어. 어릴 때도 외화를 좋아했고. 소머즈의 주희 선배님, 남과북의 버지니아를 맡은 이경자 선배님, 레밍턴스틸의 윤소라 선배님처럼 개성적인 목소리의 외화 주인공들을 정말 좋아했어. 그래서 지금은 맘껏 외화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해.”

 

혹 읽다 당황할까 하여 설명하는데, 필자와는 사제관계라 평소 평어로 대하신다. 하여 이 인터뷰도 존칭 전환 없이 그대로 워딩한다.

 

애니메이션에서도 닌자거북이의 에이프릴, 블랙잭의 피노코, 마징카이저의 애리, 드래곤볼의 부르마 등 고전명작의 여주인공을 다수 맡았다. 바다가 들린다를 통해 스튜디오 지브리의 주인공도 경험했고, 별의 목소리의 주인공도 그녀가 차지했다. 남자4인방의 존재감이 큰 최유기에서도 이린과 옥면공주를 맡아 강철같은 성대를 자랑했고, 쪽빛보다 푸르게에선 착하고 백치미 넘치던 타에코를 담당하며 귀여운 소녀부터 액션 처녀, 비련의 여주인공까지 폭이 깊었다. 그러나 이 말고도 비장의 카드가 있다.

 

성우는 스튜디오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성우가 그녀다.

 

“유만준 선배에게 들은 ‘너 왜 내연녀를 그렇게 잘하냐?’ 칭찬 잊지못해”

 

얄미운 여자 역할 전문이랄까.

바다가 들린다의 무토 리카코는 남주인공 뿐 아니라 동창들에 있어서도 얄미웠던 아이다. 주인공이지만 착하다고는 하기 힘든 모습이 꼭 바람과함께사라지다의 스칼렛을 떠올린다. 목마르니 설산에 올라가 만년설 구해오라는 옥면공주는 상식을 벗어났다. KBS무대의 2005년작 휴게소에서는 순진한 남자(이규석)에게 거짓말로 상처 준 다방레지였는데 여주인공(은영선)과 만나 서로 치유해가며 해피엔딩을 맞이하려던 순간, 종방 1분을 남겨두고 본의 아니게(?) 그 판을 깨버리면서 청취자가 라디오를 집어던지게 했다. 이니셜D에선 여주인공인줄 알았더니 어장관리녀였냐고 평가가 뒤집힌 전설의 모기 역할을 했다. 대놓고 악역보다 더 밉상인 역할도 특유의 연기력으로 기가 막히게 소화해냈다. 본인 스스로도 한동안 어린 역할 아니면 내연녀(!) 역할이 번갈아 들어오더라고 소회한다. 알고보니, 데뷔하고 얼마 안 돼 전속시절부터 이미 이런 역할에 눈을 떴다.

 

전속때 유만준 선배랑 같이 입을 맞췄는데(당신이 먼저 떠올리는 그런 표현 아니다) 내가 글쎄 선배님 내연녀였어. 근데 이걸 내가 경험을 해봤어야 감을 잡지. 그래서 그냥 내 감대로 했어. 근데 끝나고 나니까 선배가 그러는거야. ‘야 너 대체 뭐하던 애야. 무슨 내연녀를 그렇게 잘해.’라고. 물론 칭찬이지. 그리고 그 때부터 그런 역할 자주 맡았어. 내연녀, 백치미, 얄미운 애, 그러면서 나이도 어리고 예쁜 여자애들. 지금도 중년 이상 나이 대는 잘 안 와. 근데 희한하게 나도 남자 둘을 양손에 쥐고 자기주장 강한 역할이 재밌더라?”

 

이쯤에서 그녀의 어린 시절을 알아보도록 시간을 조금 되돌려 보자. 어떻게 해서 성우가 된 걸까.

 

 

 

1981년, 초등학교 2학년 때 목소리 듣고 성우 이름 맞추던 소녀

 

이번엔 80년대 초로 왔다. 본격적으로 컬러 TV 시대가 열리며 오디오, 비디오 할 거 없이 성우 컨텐츠가 활황이던 시절, 아홉 살 소녀 김지혜에게도 그 시절은 꿈 많던 초등학교 2학년 소중한 유년기였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고 케이블 티비도 아니던 아날로그 세상에서 그 소녀는 아마 이 나라에서 가장 성우에 정통했던 초등학생이었다.

 

“80년대 초반 부모님이 카세트테이프로 된 듣는 동화전집을 사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어. 지금으로 치면 오디오북이나 라디오드라마CD에 꽂힌 셈이야. 게다가 아버지가 1년에 한번씩 해외 출장을 가시는데 그 때마다 나를 비롯해 가족의 목소리를 녹음해서는 가져가시곤 했거든. 덕분에 마이크를 제법 일찍 접해본 어린이였어. 매일 성우들 목소리 듣고 그걸 내가 또 따라 흉내도 내고, 성우를 사랑하고 있었어. 그렇게 성우랑 사랑에 빠져서 지내다 보니 요새말로 원조 덕후가 되어버렸어. 어느 정도냐면, 성우들 이름을 다 알았어. 당시 전속, 프리 가리지 않고 말야. 심지어 이 작품에선 누가 1인 몇 역을 맡았는지 목소리 듣고 다 감별하고 알아챘어. 인터넷도 무엇도 없었지만 애니메이션과 외화가 쏟아지던 시대라 들을 기회는 많았지.”

 

특히나 개성적이고 독특한 보이스의 소유자를 좋아했단다. 소머즈, 밍키, 하니의 주인공인 주희, 남과북의 버지니아와 V의 다이애나(쥐 잡아먹는 파충류 외계인 외화라고 하면 당시 사람들은 지금도 기억하는 외화다)를 담당한 이경자, 레밍턴스틸의 여주인공 윤소라 등 전설의 목소리라 부르기에 부족함 없는 성우들이 그녀의 우상이었다.

 

동국대 방송 아나운서 시절, 이미 그녀 목소리에 끌린 팬들이 있었다고 한다.

 

응답하라 1994, 딱 그 시절 청춘

 

격동의 90년대로 가보자. 오렌지족이 범람하던 건국이래 최대 호황과, 그게 한순간 무너진 IMF 고개가 교차하던 시절. 그녀가 딱 응사의 그 X세대다. 그 격동 속에서도 청춘은 성우를 여전히 응원하고 열망했다.

여전히 성우랑 사랑에 빠진 학창시절 자연스레 설계도가 그려졌다. 성우 덕후는 동국대에 입학한다. 연기 전공은 아니고 사범대였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연을 이었다. 먼 꿈처럼만 느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성우를 사랑했기에 대학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4년을 보냈다. 아나운서 활동은 뉴스 뿐 아니라 MC, DJ, 꽁트, 드라마 등 성우의 활동영역과 겹쳤다. 교내 팬도 생겼다. 스스로 재능을 검증하는 기회였다고 한다.

 

난 하고 싶다고 무조건 덤비지 않아.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지. 근데 한편으론 시험이 궁금하기도 했어. 첫 시험 도전은 MBC였는데 아직 대학 3학년 때야. 12천명이 모이는데 야외에서 진행하더라? 어떻게 할까 하다 대학 졸업 선배 중 이미자 선배님(은하철도999의 철이, 케로로의 우주도령)이 계시는거야. 인사드리고 시험에 대해 여쭈니 그냥 자신있게 큰 소리로 임하라셨어. 그렇게 했더니, 진짜 150인 안에 들었어. 2차는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데 들어보니 나만 초보자야. 그래서 공부를 좀 하면 해 볼만 하겠다 생각했어. 그때 누가 나한테 어느 학원 다니시냐 묻더라고. ‘아 초보 수준으로 안보는구나’, 그 때부턴 격정적으로 움직였어. 다음해 19954학년 1학기 때 잔여 학점 다 당겨 듣고서 미리 졸업 준비 다 하고, 2학기 때부턴 사실상 MBC문화원에서 또 한번 학교생활을 시작했어. 사실 그 땐 문화원이 MBC의 관문이라 여겨지던 시기야. 상위권 학생이 곧 MBC에 차례대로 붙는다고 할 정도였지. 여기서 윤성혜 언니(마법탐정로키 라그나로크- 프레이야, 흑의계약자- )도 만났어. 근데? 어 계속 최종에서 낙방하더라? 졸업하고 바로 붙을 줄 알았는데. 성혜 언니가 먼저 붙고 나는 떨어졌지. 그리고 가시밭길이더라.”

 

그러나 그 가시밭길도 2년 후 끝났다. 먼저 97년 대교방송에 붙었다. 그리고 99KBS로 적을 옮겼다.

 

쉽게 술술 말했지만 우여곡절 많았어. 우선 나도 실전에서는 떨어서 실력을 못 보여주던 스타일이더라고. 학교 방송 때처럼 당차게 할걸, 평정심을 잃지 말걸 후회가 그리 되더라. 그걸 이겨내는 과정이 힘들었어. 하지만 이젠 그 경험 때문에 학원을 내고 학생들을 받아 가르치는 게 가능하기도 해.”

 

그녀가 가장 아끼는 캐릭터, 에이미 폰드

 

2019년 20년 차, 지금의 성우 김지혜가 기억하는 작품은...근데... 잘 잊어먹는 타입?

 

시간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와서, 어떤 작품들을 만들어 왔나 이야기해 봤다. 마침 오늘도 녹음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고.

 

스카이(기내더빙)더 허슬을 녹음했어. 앤 해서웨이를 맡았는데 평소 자주 맡는 전담 배우야. 지금도 이렇게나 녹음 일정이 있는 날은 너무 재밌어. 외화나 라디오 드라마가 소요 시간이 길어서 싫어하는 성우도 있지만 난 1순위야.”

 

본격적으로 작품 이야기를 해볼까. 그런데, 뜻밖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게 뭐야? 그걸 내가 했나? 몰라. 기억안나.”

 

대표작으로 여겨지던 작품조차 기억을 못하신다! 지브리 작품 바다가 들린다의 주연이었던 것도, 아직 전속이 없어 여기저기 극회에서 모여 드림팀이 꾸려지던 대원방송 초창기의 작품 쪽빛보다 푸르게도. KBS 토요명화로 방영한 이니셜 디도 모르신다.

어째 양석정 성우(이니셜디에선 타쿠미, 바다가 들린다에선 상대 남자 주인공이었다)랑 함께 호연한 작품들은 다 잊으셨다. 다행히(?) 나중에 바다가 들린다는 기억이 나셨다고.

 

덕분에 석정 오빠랑 그 작품 이야기하면서 통화로 옛날이야기 할 수 있어 반갑더라. 근데 그게 워낙 연기를 잘 모르던 어릴 때였어. 해서 오빠한테 우리 다시 이거 해볼까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야 지금 내가 저 (풋풋한)소리가 나오겠냐인거 있지.”

 

원래 평소 작품들 기억을 잘 못하시는 편인가요?”

 

내가 삶에서 뭔가를 잡질 않고 물 흐르듯 흘려보내는 타입이야. 사람도 일도, 뭐도 다. 그 순간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 아닐까? 녹음 후 대본을 꼭 갖고 가는 선배님도 계시지만 난 그 자리에서 버려. 한번 몰입을 딱 하고 나면, 그걸로 만족해. 하지만 기억하는 작품들도 많지. 최애 캐릭터도 있어.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진 애는 역시 에이미야. 이유? 나랑 가장 성격이 닮았어. 연기를 한 게 아니라 놀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야. 그리고 아이언맨의 기네스 펠트로, 무간도의 진혜림. 기내더빙에서 자주 본 키아나 나이틀리의 작품들도. 안나 까레니나 같은 고전작도 기억에 많이 남아.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기대 안했다가 몰입 후 목이 메어 대사를 못했던 기억이야. 첨밀밀도 기억나. 구자형 오빠(당시 여명 역이었다)랑 했는데 녹음 당시엔 제법 상영한지 시간이 지난 오래된 영화 축이었는데도 무척 세련됐었지.”

 

역시 외화를 좋아하시네요.”

 

외화를 하고 싶어서 성우가 됐으니까. 아무래도 꿈을 꾸게 한 영화가 인상에 많이 남게 되더라.”

 

애니메이션은 기억 안나세요?”

 

별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기억이 나. 최유기도. 이린하고 옥면공주 등을 맡았는데 제법 오래 했던 작품이라 기억나지. 이린은 대사도 많은데다 방방 떠서 고생했어. 좀 조용한 역할 하고 싶다고 여겨질 정도였어. 그리고 베리베리뮤우뮤우도 기억나. 왜냐면 의외의 배역이었거든. 그간 까랑까랑한 애들만 들어오다가 차분한 애를 맡게 되어서 말이야.”

 

애제자이자, 방과후교사였고, 이제는 성우이자 학원에 같이 출강 중인 지난번 주자 김보나 성우와 함께

 

성우 학원부터 방과후 성우교실까지, 교육계 큰 손이 되다

 

성우를 좋아하는 사람이 일본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있다. 풍성해서다. TV 연간 방영 리스트에 신규 애니메이션 이름이 수십개씩 오르내린다는 거짓말같은 이야기(당연 더빙이다)부터 성우가 연예인으로서 대접받는 현실, 성우 자체를 테마로 한 즐길 거리가 많다는 건 대한민국에선 꿈같게만 여겨진다. 여기에 대해선 뮤지컬 등 엔터테이너 영역 확대를 말하던 첫 주자 위훈 성우나, 성우계 전반에 대해 짚던 구자형 성우 등을 통해서 이야기해 본 적 있다.

 

성우 김지혜는 보다 시각적으로 현실화시킨 사례다. 지인조차 몇년만에 다시 보면 깜짝 놀랄만큼 근래 들어 그녀 직함이 엄청 늘었다. 성우는 맞는데, 본인이 직접 마이크 앞에 나서 실력을 보여주는 대한민국 성우만으로는 성에 안찼다. 성우 콘텐츠를 갖고 교육자로 또 사업가로 나선 것이다. 방송연기교육원 대표님, 성우 테마 카페 사장님 등 지금 만나면 받을 명함이 많다.

먼저 이 중에서도 가장 괄목할 교육 사업 이야기를 나눠볼까. 현재 성우님이상으로 자주 듣는 말이 선생님이다.

명함 한 장을 받았다. 보이스투보이스 방송연기교육원 대표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먼저, 쉽게 짐작했듯 성우학원 원장님이다. 그것도 서울 이대 본원을 비롯 부산, 수원 등 각지에 지사를 내며 점차 확장 추세다. 사실 성우지망생들이라면 이미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도 곧 썰을 풀 것이니 성우지망생들은 잠시 기다리시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끝이 아니다. 방송국 입사를 목표로 한 지망생 뿐 아니라 성우가 꿈인 어린 학생들, 성우 체험을 해보고픈 일반인들까지 케어하고 있었다. 마치 스포츠가 올림픽 금메달을 위한 엘리트 육성 뿐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생활체육으로 확대되고 있듯, 성우가 점차 사람들 기억에서 희미해진다고 안타까워하던 실정에 거꾸로 당신도 한번 즐겁게 해볼래요?’ 하며 생활 속 교육과정으로 들고 나온 것이다. 반포, 잠실 등 분원에선 어린이, 청소년 반이 열리고 있다. 그리고 방과후학교 사업을 통해 학교에서도 성우교실을 열고 있다.

 

특히 방과후 성우교실 프로그램의 성과가 크다. 애니메이션 더빙을 교실에서 해 보는 방과후 프로그램 런칭은 지금까지 만나 본 어떤 주자들에게서도 들어본 적 없는 발상이다. 지난 번 열여덟번째 주자 때도 소개했는데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과정 중에 성우교실이 생겼다. 성우 김지혜의 작품이다. 아직 가나다가 어려운 초등학생이 영어수업부터 듣는 요즘, ‘성우를 방과후교실로 데려왔다.

어린이들에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속 목소리 주인공에 대해 알리고 본인이 성우를 체험하는 수업의 효과는 성우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기대할 법 하다. 사실 글쓰는 본인도 현재 이를 통해 초등학교에 강사로 나서고 있고, ‘내 장래희망은 성우예요라는 초등학교 1학년생을 만나고 있다.

내일의 성우를 꿈꾸는 지망생을 비롯 우리말 교육이 필요한 초등학생, 진로를 꾀하는 청소년 등 대중에게로까지. 어떻게 해서 판이 이렇게 커졌을까. 전속 시절 지망생 서넛을 안고서 과외교습을 하던 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대학 전공 때 선생님도 괜찮겠어라고 고민했거든. 실제로 성우 활동만큼이나 제자들을 길러내는 것도 즐거워. 사주에서도 교육자가 운명이라고 나오던데 진짜인 거 같아. 처음이 언제였더라. 성우 교육을 통해 누군가의 스승이 된 게. 그게, 전속 3년차였어.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 셋을 가르치게 됐는데 누가 전속 때 그걸 소문내고 다니겠어. 조용히 소문 안내고서 했어. 그러다 교생 실습 때 만난 아이도 새로 들어와 넷이 되었고, 소리 지를 장소가 없어서 차 안에서도 연습하고 장소를 빌려 여기저기 다니기도 했지. 그 때 성우가 된 아이 둘이 KBS 29기 송정희, 임주현이야. 소문을 듣고서 계속 찾아오대? 난 솔직히 그 때, 그만하고 싶었어. 일에 결혼에 출산에, 나중엔 아이를 둘씩이나 키워야하고 점점 바빠져서 발 빼려는데 자꾸 합격자가 나오고 또 누가 찾아와. 그러다 깨달았어. 내가 힘을 쭉쭉 빨리고 있다고 여기는 지금 어떻게 버티고 있지? 생각해보니까 난 이 아이들한테 에너지를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받아다 충전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작정했어. 오피스텔 얻어 본격적으로 학원을 열었어. 이후 이래저래 옮겨 다니며 키워가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왔어. 배출한 합격생 중 정희나 동훈이(대원방송 2기 이동훈)는 현재 학원에서 나랑 같이 강의 중이고. 동기인 성웅 오빠도 같이 하고 있어.”

 

원장님으로서 성우 학원을 여기까지 키워낸 비결이 뭘까요?”

우선 내가 지망생 시절 이것저것 다 겪어보니 그들 사정도 생각도 고민도 다 생생하고 기억하고 있거든.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것에 앞서 그걸 다 겪었으니까 이들이 지금 어떤 상황이고 어떻게 연기에 접근하고 또 어떻게 하면 한 걸음 나아가는지 아니까 답이 나왔어.”

 

그렇게 학원이 잘 되면서 현재의 이대역 앞에 본원을 냈다. 그 때가 2014, 간판을 걸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렛잇고 노래가 들려왔다. 겨울왕국 열풍이던 때다. 순간 그 학원 원장님은 생각했다. 어린이 성우가 부각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어린이들을 전문적인 교육으로 준비시키는 게 필요하진 않을까. 대상이 확대되는 순간이다.

 

우리 애도 포함해 어린이들 여럿을 데려다 무료 특강을 열어봤더니 호응도 성과도 있었어. 성웅 오빠가 얻어다 준 애니메이션 샘플로 더빙해보니 처음엔 아예 소리도 못내던 애들이 4주만에 너무 잘하는거야. 그 때 찾아온 부모님 한 분이 그랬어. ‘방과후 사업으로도 괜찮겠다라고. 그래서 정말 그렇겠다 싶어 바로 시작했지. 처음에야 장비부터 시작해 시행착오에 애로사항도 많았어. 그런데 어린이들에게 또 대중에게 성우 수업은 단순 스피치가 아니라 정신적 치료까지도 가능한 수업이라고 확신해. 성우가 되어 받은 많은 행복을 대중들과 나누고 싶었어.”

 

 

 

방과후 성우교실, 성우지망생들에게도 희소식이 되다

 

그렇게 방과후 성우교실이 열렸다.

교육을 받는 이들만 수혜 대상은 아니다. 입사를 준비하는 성우지망생들에게도 업이 생겼다. 성우교실 방과후 학교가 운영되려면 강사도 양성해야 한다.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해 학교를 배정받는 순을 따르게 되는데 아무래도 성우 공부를 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식적 측면에서나 접근적인 측면에서나,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과 관련되었기에 동기적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지난번 만난 김은연 성우를 비롯 학교에 나가며 준비를 해 성우가 된 이들이 있다. 김은연 성우는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되었고, 당장 학원비 내고 생활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즐거웠다고 밝혔다.

 

사실 성우 지망생 입장에서 가장 큰 난관은 공부를 하면서 생업을 병행하는 거거든요. 특히 가장 큰 고민은 이렇게 학원비 내며 공부를 했는데도 끝끝내 성우가 안되면 그 땐 뭐하고 살지?’예요. 성우 공부한 이력은 다른 데선 직접적으로 쓰일 데가 없다는 푸념을 많이 들으셨을 거에요. 그래서 이 사업은 지망생에게 새 길 하나를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데요.”

 

성우만 바라보고 괴로워하는 제자들에게도 이 일을 하는게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거 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 무엇보다도 그토록 하고 싶어하는 일과 관련 있잖아. 무엇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여러분도 갖고서 그에 따르는 기쁨을 느끼도록 해주고 싶어.”

 

고구마 줄기처럼 새로운 일은 또 새로운 일을 끌고 왔다. 교육 사업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없었던 성우 엔터테인먼트 회사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까지 생겼다.

먼저 극장가 등에서 어린이를 애니메이션 더빙에 기용하는 아역 성우 수요가 늘어난 지금,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잘 준비된 아역 성우를 공급하는 어린이 성우 에이전시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거기까지 발을 넓혔다. 이렇게 현재 방송연기교육원은 성우 학원, 방과후 교육, 에이전시 사업을 모두 하는 데 이르렀다.

그런데, 일단 엔터테인먼트 영역까지 닿은 이상, 이게 끝이 아니다.

 

성우 테마 카페 스페이스 청이 열렸다

지금까지 이런 카페는 없었다.. 성우 테마 카페도 열었다!

 

얼마 전 본원 옆에 카페 하나가 생겼다. ‘스페이스 청은 성우 테마 카페다. 카페 안에선 이누야샤의 그 전설적 피아노 연주곡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 흘러나오고, 얼마전 프리한19에서 떼창을 부르는 곡 12위에 랭크된 이용신 성우의 달빛천사 나의 마음을 담아도 들을 수 있다. 성우 이동훈의 블루에이드, 강수진의 자몽에이드를 한잔씩 주문하고 앉아보자. 마치 각자 캡틴블루 죠, 이누야샤의 색깔 같아서 어떻게든 작품 이야기가 나온다. 이 기세라면 조금 있음 그분의 인간성기사 뿌뿌뿡이... 이건 무슨 메뉴로 만들어야 하나. 하여튼 그것조차 나올 기세다.

한국성우협회에 등록된 지난 80년간 성우들 명단을 한 눈에 확인할 수도 있다. 카페 소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리뷰해 보겠다만, 여하튼 성우를 소비재로 삼아 대한민국 성우 팬들을 불러 모을 아지트 하나가 서울 중심부에 생겼다는 것이 큰 뉴스다. 성우를 꿈꾸는 자는 물론, 팬심으로 찾아온 이들도 쉬어갈 휴게소가 생겼으니 앞으로는 어떤 것으로 더 채워넣을지가 관건이다.

 

그래 다들 와서 누렸으면 좋겠어. 난 여기서 행사도 해보고 싶어. 성우가 직접 무대에 오르는 낭독회라던가. 난 그런 생각도 해. 기회가 되면 김세한 선배님이나 손정아 선배님같이 까마득히 윗분들의 고급스런 외화 속의 소리도 여기서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상시 공연이 이뤄지도록 기획 중이야. 생각해 봐. 심신이 지쳤을 때 그립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여기서 에세이를 읊어 낸다던가, 누군가의 편지를 읽어준다던가 한다면 어떨까. 사실 성우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야 이름 들어도 누군지조차 모를거야. 직접 귀로 듣고 눈으로 본적도 없을테니까. 하지만 언젠간 아이돌 노래 한곡 듣는 것 못지 않은 가치가 대중들에게도 생겨날 수 있을거야. 멋모르고 찾아온 손님들도 차 한잔 마시다 그날 저녁 낭독회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가는 곳, 팬들이라면 관련한 상품들도 쇼핑해볼수 있고 팬미팅도 하고, 혹 수익금이라도 나면 고객과 성우들이 조금이나마 나눠갖고 그러다가 우리 젊은 성우들도 옛 선생님들의 추억이자 전설의 모습을 보고 듣고 확인할 공간이 된다면 이 카페는 가능성이 무한할거야.”

 

지난 8월에는 성우 위훈의 송포유, 그녀를 비롯 정재헌 이주창 장병관 윤용식 등이 출연한 점프하이 공연이 열렸다. 앞으로는 더 많은 후속 공연을 준비 중이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김세한, 손정아 두 분이 오셔서 원스어폰어타임인 토요명화 같은 공연이 열린다면 좋겠다. 그 땐 현직 성우들도 찾아와 힐링하는 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20주년 맞이하고 20년 후를 설계하는 그녀의 청사진, 그리고 미래의 세대에게

 

미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올해로 내가 성우된지 딱 20주년이야. 으음, 사실 지금 이대로의 것을 지켜가면서 더 키우고 꾸려가는 정도로도 좋아. 이미 원도 없이 이것저것 다 한거 같은데? 어디 보자. 우선 성우. 이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앞으로도 좋아하면서 할 생각이야. 알고 지내는 성우들이 내게 주는 가장 많은 질문이 넌 성우 일도 많은데 다른 일을 하느냐야. 그럼 내 대답은, ‘난 성우 일을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보단 좋아서 하고 싶어, 돈은 다른 일로 벌고 싶어. 좋아하는 일도 먹고 살다보면 초심이 흐려져. 10만원짜리 일과 100만원짜리 일을 앞에 두면 똑같이 보게 되진 않아. 지망생 땐 어떤 일이 주어져도 즐거운데 성우가 되면 달라고 돈이 곧 가치의 중심이 된다구. 돈 버는 대신 재미는 줄지. 사실 성우도 재미없는 녹음이 있지 않겠어. 돈 벌기 위한 녹음, 하기 싫은 역할, 그런데 짬을 먹으니 돈은 다른데서도 얻을 수가 있더라고.”

 

성우로서는 이미 이루고픈 걸 다 하신 걸까요?”

성우로서는 지금도 만족스러워. 행복을 느끼니까. 앞으로도 지금만큼만 해내고 싶어. 내가 성대결절만 세 번 겪었다? 병원서 그래. ‘지금도 이거 진행중인거 아시죠?’라고. 그런데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1순위 영역은 외화, 라디오드라마가 될거야. 이들 작업은 시간이 길고 힘들어서 싫어하는 성우들도 있어. 그런데 난 이런게 좋아.”

 

그럼 돈 버는 일에 대한 목표는?”

그래서 회사를 차렸어. 그럼 이윤 창출을 위해 열심히 해야지? 지금 함께 하는 직원들이 평생직장으로 생각할 수 있을만큼 해 내고 싶어. 연기자, 교육자, 회사 대표 세 직함 중 셋째는 아무래도 부담도 크고 스스로에 부족함도 느껴. 앞으로도 망하지 말자, 잘하자 하고 생각하는 게 목표라면 목표야. 여기 하나 더 큰 꿈을 불어넣자면, 성우가 성우 일로 더 대접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거. 어차피 일본 같은 기획사 체제가 아니잖아 우리나란? 작품이 대박나도 성우와는 관련이 없어. 겨울왕국에서 지윤이(박지윤-안나 역)가 떴다 한들 개런티가 수입의 전부 아니겠어. 일본에선 성우가 배우처럼 다방면으로 활약하는데 말야. 내가 하는 일이 후배, 어린이 성우, 나아가 기존 성우의 이익까지 도울 수 있음 좋겠어.”

 

현재 제자를 비롯 성우지망생들에게도 마지막을 한말씀 남겨주세요.”

이런 말 하면 두 분 다 놀라실 텐데, 난 정미숙 선배 보면서 참 대단하다 느끼고 있고 영향도 많이 받았어. 여기서 처음 밝히는 거야. 보시면 평소 교류가 잦지 않은 애가 이런 생각 했나 하실거 같아. 배틀비드맨을 할 때 둘이서 같이 많이 붙었어. 녹음실에 들어가면 늘 먼저 계셨어. 더빙이 입만 맞추는건가 하던 시절에 이 분이 화면 속으로 뛰어드는걸 보고 큰 도움을 얻었지. 그리고 은영선 선배에게도. 그 분은 드라마 연기에 한참 고민 많을 때 답을 줬어. 옆에서 보고 아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말야. 소리가 아니라 행동에서 영감을 주는 그런 연기를 하셔. 마이크가 아니라 허공에 던지는 눈빛이 바뀌는 걸 봤어. 미숙 선배가 더빙의 에너제틱함을, 영선 선배가 드라마의 길을 보여줬어.”

 

성우 김지혜는 20년 전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이들에게 네가 곧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연기의 가능성이 그렇듯, 사람도 그래. 사람은 몰라. 얼마나 바뀔지. 제자들이 내게 젤 많이 묻는 건 제가 성우가 될 수 있을까요?’. 심지어 퍼센테이지가 얼마나 되는지도 물어. 내 답은 아무도 모른다. 단 누구든 가능성은 있어. 오늘 내가 내일 어디에 있을지 조차 알 수 없는 걸. 대부분은 비슷하겠지만, 그 조차도 ‘1만 바뀌면 6개월 후엔 180도 달라지는 거잖아. 시험 칠 때 그 사람 위치는 중요치 않아. 내가 경험해 봐서 그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 금방 될 거 같은 애가 10년이 걸리고, 생각도 못한 애가 금새 붙는 게 현실이야. 수업 때 평소 실력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유야.”

 

그녀는 만일 자신의 두 딸이 엄마랑 같은 길을 가고 싶다면 응원할 것인가 걱정할 것인가란 질문에 전자라고 한다. 오히려 자신이 먼저 물어보고 있다고 했다.

 

본인이 좋다면야 당연히 응원하지. 내가 성우가 되어 누려온 그 기쁨, 행복을 아이들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열아홉명의 성우를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성우 본인의 이야기 외에도 성우에 대해 각자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있었다. 그 부분을 한데 모으면 레고처럼 퍼즐처럼 작품 하나가 완성되겠지. 인터뷰를 전부 돌아보면 성우가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있는 것. 그것이 필자가 목적하는 바 중 하나다. 이번 주자는 성우가 우리 사회 전면에 보다 나설 수 있게 꾀하고 있었고, 구상하는 것보다는 이미 현실로 이뤄낸 성과를 보여줬다. 성우를 소비하는 팬도, 성우를 꿈꾸는 자도, 성우가 되어 있는 자도, 성우를 공부로서 재미있게 배워가는 어린이들도 기쁘게 찾아갈 수 있는 곳. 호텔 델루나의 장만월 마냥 그녀도 예쁜 성 하나를 짓고서 손님들을 맞고 있다.

20년 후 그녀의 성도 그것처럼 스카이바가 있는 100층까지 쌓아올릴 수 있을까. 망하지 않고 잘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녀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글 사진 권근택

:
Posted by 빛의목소리

<성우인터뷰> 18. 김은연 김해에서 온 방과후 성우 교사, 절대음감 성우가 되다

 

 

 

 

절대음감이시라면서요?”

 

잠깐잠깐 TV에서 듣던 그대로 노래를 들려주었다. 스피커로 듣던 그대로의 음색 한 줄을 잡고 이 글에 엮어 도레미파솔라시도까지 연주해 본다.

연재를 하다보면 한결같이 독특한 곡절이 있다. 열여덟번째만에 처음 만나는 20대 주자라 짧거나 적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언젠가부터 잊고 있던 어릴 적 꿈을 기억해내고 부모님 뜻을 어긴 효녀, 수능에서 본래 능력의 마이너스 100점 패널티를 받고도 손꼽히는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영재, 어린이들에게 성우의 세계를 가르쳐주며 어느덧 자신도 성우가 된 선생님, 성공한 덕후, 검소한 멋으로 무장한 센스쟁이 아가씨, 7080세대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을 흔드는 명작 만화 시리즈의 히로인,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통해 성녀의 길을 걷겠다는 절대음감의 연기자.

이렇게 이번 이야기는 도레미파솔라시도 일곱가지 이야기로 에스컬레이트하며 진행한다. 당찬 스물아홉 아가씨 성우 김은연의 이야기다.

 

 

 

대원방송 성우극회 72016

출연작

애니메이션

김지나 - 100% 파스칼 선생님

스네이크 히어로 우와바미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빨간머리 앤 - 나레이션

원피스 - 코제트, 베이비5, 모차, 샬롯 스무디 등

이토준지 컬렉션 - 키타와키 나츠미 등

톰 소여의 모험 - 에이미, 리제트, 베니 등

플랜더스의 개 - 누레뜨

학원 베이비시터즈 - 마미즈카 타쿠마, 쿠마즈카 야요이

마징가Z - 아수라남작 (이상 대원방송)

특촬물

가면라이더 고스트 - 한지호

가면라이더 이그제이드 - 우승재 등

파워레인저 애니멀포스 - 조하늘 엄마 등

마징가Z 인피니티 - 아수라 남작 (극장판)

노래

엄마찾아 삼만리 - 오프닝

꼬마너구리 라스칼 - 오프닝, 엔딩

퍼즐앤드래곤 크로스 - 엔딩

샾킨즈 - 삽입곡

던전 앤 파이터 숙명의 문 오프닝

빨강머리앤 오프닝, 엔딩

 

#- 김해 출신 소녀, 나도 모르던 초등학생 시절 일기를 꺼내어 꿈을 깨닫다

 

두 번째로 만난 대원극회 출신 성우다.

첫 인상을 서술해 보겠다. 우선, 미인이다. 도회지 멋쟁이보다는, 어딘가 서울에 갓 상경한 섬소녀나 섬마을에서 풍금을 켜던 선생님같이 낯선 매력이 있다.

사실 섬 출신은 아니고, 경상남도 김해에서 왔단다.

 

지난번 김성연 성우는 초인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이번엔 어떨까. 묘하게도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 한 부분이 비워져 있다. 어릴 적 자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어른이 되어서 역추적해 찾아냈다.

 

전 노래도 좋아하고 공연무대도 좋아하고 정말 많은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제 어릴 적 꿈이 뭐였냐면, 성우였더라고요.”

 

어릴 적 고향에서의 기억은 솔직히 TV보는거 말고 할 게 없을만큼 한미했다. 특히 그 시절, 밀레니엄 시절만 해도 PC나 인터넷은 아직 부유층의 전유물에서 대중적 산물로 한참 전환되던 시점이라 매스컴의 영향은 지금 이상으로 컸다.

가뜩이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할 초등생 시절이다. TV를 친구이자 스승으로 두던 그 시절 인생을 좌우할 자문을 했다.

 

저기 들려오는 저 듣기 좋은 소리의 정체는 무얼까 궁금한거죠. 설마 기계로 쪄 낸 소린 아닐 터, 성우의 존재를 일찍부터 알게 됐어요. 하지만 워낙 꿈 많을 시절이라 바로 성우를 목표한건 아니고 폭넓게 성악가, 배우, 특히 정태우 안재모 조승우처럼 목소리가 좋거나 노래 잘하는 뮤지컬 배우를 막연하게 선망했다...고만 기억하고 있었죠. 아니더라고요.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때 제가 쓴 일기장을 찾았어요. ‘내 꿈은 성우라고 적혀 있어요. 기억이 안 나는데 출발점이 거기 있더라고요. 다만 다음 글귀를 보면 막연하게 성우를 꿈꾸기에는 내 목소리가 성우들처럼 좋다는 생각도 못하기에 그저 팬으로만 만족하자라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한동안 잊었나 봅니다.”

 

그녀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본인은 겸손하게 말하지만 듣고 있으니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재능도 갖췄다. 아직 어떤 직함을 가진 어른이 될런지 속단 못할 중학생 시절에도 학예회가 되면 혼자서 뮤지컬 연극의 대본, 연출, 출연, 노래를 다 맡아 무대에 올렸다고 한다. 배우일지 연출가일지 가수일지 성우일지 프로듀서일지 알 수 없어도 대강 어떤 방향으로 진로를 정할지 예감하게 만든 소녀였다.

공부도 잘했다. 고교 시절 전교 1등도 끊어본 그녀다. 때문에 그게 암초가 될 뻔 했다. 부모님은 수재인 딸을 변호사, 혹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키우길 바라셨다고. 실제로 수시전형을 통해 고려대 언어학과 입학을 예정에 두고 있었고, 그렇게 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 수능 100점 까먹고 원하던 대학 들어가다

 

배탈이 났어요. 수능 때! 그래서 낙방한 거예요. 무려 예상한 것보다 100점이나 떨어졌어요. 그런데, 그래도 재수는 안했어요. 단국대 공연영화학부에 입학했거든요.”

 

수험생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함에도 대단한 일을 두 가지 해 낸 그녀다. 첫째는 100점 마이너스인 상황에서도 인서울에 입학했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니 몇 점 이었나 물어볼 걸 그랬다.

그리고 더 대단한 일은, 그동안 부모님 말에 거역하지 않던 착한 소녀가 처음으로 자기 뜻을 밀어붙였다는 것. 드디어 자신의 길을 스스로 정하고 밀어붙였다.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인지, 하늘이 도운 것인지. 그녀는 재수를 권하던 부모님 뜻을 꺾고 원하던 대로 노래하고 연기하는 길을 택했다.

그건 최고의 효도를 위한 불효다. 자기 길을 스스로 찾아 개척하는 자녀야말로 최고의 효녀 아니면 무엇이겠나.

 

이제는 제 길을 응원해주고 계세요.”

 

대학생이 되어도 꿈에 욕심 많은 수재였다. 무대에 오를 날을 기다리며 서클을 만들었다. 와중에도 성적 관리는 여전했다. 수석으로 3년 반 만에 조기 졸업을 한다. 다만 여전히 자신의 미래가 뮤지컬 무대일지 정극 무대일지 카메라 앞일지는 안개 속이었다고.

 

아이돌이요? 제가 무슨. 그건 정말 내외로 타고난 예쁜이들이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건 정말 생각 안했어요. 그런데, 대학에서 성우의 길을 생각하게 하는 일들이 거듭됐어요.”

 

화술수업을 담당하는 겸임교수가 EBS 최지환 성우였다. 수업에서 마이크 앞에 성우처럼서게 되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졸업 즈음엔 졸업작품 등 녹음 제의도 들어왔다. 자신의 능력을 개발할 좋은 실습 기회라 여겨 모두 다 받았고, 반응도 좋았다. 성우 스터디에도 들었다. 그 때 만난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성우를 목표로 삼고 길을 다져갔다.

 

김승준, 신용우 선배님 덕후였어요. 목소리 녹음 파일 듣다가 잠들었죠. 다만 대학시절 성우를 목표로 삼았음을 대외적으로 밝히고 다니진 않았어요. 성우는 연기자가 아니란 주변 시선 때문에요. 한동안 남동생만 알고 있던 비밀이었죠.”

 

 

#- “선생님 성우예요?” 방과후 성우교실 강사 김은연의 행복했던 나날

 

사실 어머님은 그녀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길 원하셨다. 성우지망생, 험한 길을 선택한 그녀 역시 그게 적성에는 맞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지망생에겐 돈이 필요하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더욱이 지금 공부하는 것과 연관된 일을 하며 학비를 대고 생활을 하면 좋겠다.’

 

열여덟번째 연재 고개에서야 털어놓지만 성우 지망생들 공통의 바람이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자니 가계부를 쓰다 몇 번씩 던져버리고 넥타이 매고 출근하자니 야근공화국 대한민국에선 학원 시간을 맞추는게 버겁다. 사실 성우 지망생 최대의 난관은 실력을 쌓는게 아니라 현실과의 절충안을 찾아 장기 플랜을 짜는 것.

그런 점에서 그녀는 행운아다. 초등학교 방과후수업에 성우교실이 도입되는 그 시기에 기회를 바로 잡는다.

 

김지혜 선배님(1992 KBS 23)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수업을 들으며 수학했거든요. 그런데 마침 선배님이 성우학원과 동시에 방과후 성우교실을 시도하시는거에요. 학원 수업을 착실히 듣는 한편 방과후교사 지도사 양성과정도 병행하면서 제1기 영어더빙지도사자격을 취득하고 방과후 교사로 1년간 서울 소재 학교에서 활동했어요. 결국엔 어머님 소원대로 교사가 된거죠. 평생 직업은 안 된 것이 결과적으로는 다행이에요. 역시 성우가 제 천직이니까. 그래도, 그 땐 제게 큰 도움이 되고 즐거웠던 시간임엔 틀림없어요.”

 

 

학생들에게 한번은 거짓말도 했다. 선생님 진짜 성우에요?”라고 물었을 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 나 성우야라고 했다고.

 

그 당시엔 자기 최면이었어요. ‘어차피 될거잖아라면서. 사실 대원방송6기 시험 최종까지 가서 그 중 저만 떨어졌거든요. 컸죠. 충격이. 충격에서 벗어나 난 7기 성우라고 최면걸고 시작하던 때예요. 학교 세 곳에 출강하며 그 사이 많은 학생을 만났어요. 그동안 전 정말 늘었어요. 선생님으로서도, 또 성우 지망생으로서도. 아이들에게 성우를 가르쳐주면서 아이들의 말뽄새가 예뻐지고, 그 변화하는 모습에 부모님들이 좋아하죠. 동시에 제가 치어업하게 되니까 분기마다 학생수도 늘어나고 제 실력도 늘어나요. 그리고 정말로 7기 때는 합격했죠.”

 

합격 통보를 받을 때 수업 중이었다. 쉬는 시간에 부재중 전화가 있어 살짝 예감을 했다.

 

장예나 선배님이 받으시더라고요. ‘김은연 씨 합격하셨어요라는데 울었지 뭐예요. 아이들한테는 들키지 않으려 정돈하고 교실에 들어갔어요.”

 

1년에 한번 열리는 어린이 성우대회 때 진짜 성우가 되어 응원하러 갔다. 지금도 그 때 만난 학생들과는 연락하고 지낸다. 꿈이 선생님따라 성우가 된 학생도 있다. 그렇게 성우지망생은 선생님이 되어 자신이 배운 것과 기분좋게 꾸었던 꿈을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고 진짜 성우가 되었다.

 

 

 

#그녀는 검소한 매력쟁이

 

다니엘 웰링턴을 차시는군요. 전 파슬인데.”

, 실용적인 게 좋아요.”

 

그녀의 시계.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브랜드 시계 중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중저가다. 그러나 알뜰하면서도 나름의 멋을 낼 줄 아는 이들에겐 좋은 선택지가 된다. 절제되고 심플한 느낌, 검소한 맛이 있다. 성우 김은연 본연의 매력을 뿜뿜하는 아이템이다.

 

레미제라블의 마리우스는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며 번역료로 먹고 살았다. 가난함에도 공부에 매진하는데 주안점을 뒀고 일감이 반토막나면 공부할 시간이 두배로 늘었다 좋아하던 고학생, 그치만 외출할 때 보면 여느 부르조아 부럽지 않게 멋쟁이였다. 단벌신사라도 절제되고 말끔하게 허용된 선 안에서 자신의 매력을 발했다.

 

제가 사실 돈을 많이 안 써요. 꿈에 대한 욕심은 커도 물욕은 없어요. 지망생 때 그런 성격이 도움이 됐죠. 학교 세 곳에서 수업하고, 가끔 언더그라운드 일을 하는 정도로 제게는 풍족함이 주어졌어요. 제가 그랬잖아요. 방과후 성우교사가 지망생으로 큰 도움 됐다고. 공부와 유관한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보장된 수입에, 공부할 시간 여유도 주어졌으니 제겐 정말 일생 중 보람찬 1년이었죠.”

 

세상 사람들은 다보탑처럼 화려한 미인에 주목하지만, 석가탑처럼 수수한 미인을 선망하는 이도 있다. 화사함 대신 내면에 빛을 담고 은은하게 그것을 발하는 성우계의 숨은 매력쟁이다. 성우 지망생이라면 역시 체크할 대목이다. 넉넉지 않게 지망일기를 쓰며 지혜롭게 아끼면서도 아무렇게나 다니지 않고 부담 없는 선에서 충분히 멋낼 줄 아는 성품이 꿈을 놓지 않도록 만드는 지구력과 상대를 매료시키는 매력 겸장의 인재를 만든다.

꿈을 이룸에도 또 다른 꿈이 있음에, 지금도 그것을 잃지도 잊지도 않았다. 꿈에 욕심 많은 여인은 오늘도 마이크 앞에서 금욕적이고도 고고한 자태를 발산하고 있다.

 

 

 

 

#절대음감의 성우 탄생, 현재진행중인 대원의 신성

 

고대하던 성우계 입성, 허나 현실이 된 순간 장밋빛 미래는 또 다른 벽으로 갈 길에 장막을 친다. 어려움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고, 지망생 때는 잘 한다는 소리를 듣고 정말 잘 하는 줄 알았다니 웬걸, 입봉하기 전 선배들의 녹음장을 참관하니 클라스가 다르잖아. 근자감에 부끄러웠고 그러다 후딱 지난 3개월, 드디어 데뷔를 한다. 그런데.

 

데뷔 역할이 죽는 역할이에요?”

가면라이더에서 죽는 여자로 데뷔했어요. 대사는 없고 으어억하고 죽는 소리만 내요.

속상하셨겠어요.”

아니요. 정식 데뷔인데 기분 나쁘긴 커녕 기뻤죠. 다른 대사가 없어 실수할 부담도 없었죠.”

 

분명 그녀는 연기 뿐 아니라 노래에도 욕심과 사랑이 많다. 소원대로 출연작 못지 않게 한국어 버전 오프닝, 엔딩, 테마곡을 부르며 대원방송의 공식 디바(?)가 됐다. 실제로 주변에서 너 노래 시키려고 뽑았나 보다할 만큼 뛰어난 솜씨를 보인다.

 

엄마찾아 삼만리 주제가를 부를 땐 올드하지 않게 불러달라는 주문을 받고 난감했죠. 노래가 올드한데 이를 어쩌지 하고 고민도 했죠. 이 밖에도 빨간머리 앤의 오프닝, 엔딩과 꼬마너구리 라스칼 오프닝, 엔딩, 던전앤파이터 숙명의 문 오프닝 등을 담당했습니다.”

 

나무위키에선 그녀를 절대음감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성우의 영역이 연기 뿐 아니라 노래라던가 미래의 성우를 양성하는 지도자로까지 생각 이상으로 넓어질 수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하는 인터뷰다. 멀티플레이어로 출항한 스물아홉살 전속 성우 그녀가 10년 후 서른아홉살 땐 대원 극회에 어떤 족적을 남기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리고, 기대되는 대목이 또 하나 있다.

 

 

#추억의 명작 애니메이션 재더빙, 그리고 추억을 복원하는 데 그녀가 있다

 

현재 케이블 애니메이션 채널은 복고풍 바람이다. 투니버스는 카드캡터 체리를 20여년만에 재더빙해 방영하고 대원방송은 몇 발 더 나가 70~80년대를 수놓았던 명작 고전을 다시 더빙해 방영하는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신작으로 마징가Z를 방영한다고 했을 때 필자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극장판 인피니티Z 국내 개봉과 맞물려 벌어진 경사(?)가 되겠다. 사실 명성과 달리 75년 방영 후 정작 공중파에선 다시 재방하지 않아 이후 태생에겐 전설처럼만 여겨지던 마징가Z. (비디오로는 90년대 초 발매된 적이 있다) 게다가 80~90년대 일요일 아침 어린이들을 깨우던 만화 동산시절을 재연하며 톰소여의 모험, 플란다스의 개, 꼬마 너구리 라스칼, 빨간머리 앤 등 고전 명작의 주말 아침 편성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 작품의 오프닝, 엔딩을 그녀가 맡았고 당연히 극 중에서도 출연하고 있다.

여기서 궁금한 점, 90년 출생한 그녀가 과연 출생 전후로 방영했던 이들 작품을 알고 있을까.

 

몰랐어요. 그냥 그런 작품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릴 적 이들을 보며 자라난 추억은 없죠. 오히려 부모님이 알고 계실 거예요.”

부담 되거나 하진 않았나요? 추억의 작품을 다시 살려내야 하는데.”

저는 그래서 오히려 과거 더빙됐던 작품은 보지 않고 나는 나라는 각오로 녹음에 임하려 해요. 뭐랄까, 봤던 캐릭터를 다시 연기하는 게 더 어려워요. 그리고 과거 선배님들의 캐릭터를 물려받는다는 것은 드문 일이면서도 정말 어려운 상황이예요. 밀짚모자 루피를 강수진 선배님이 안 하고 다른 사람이 한다는 걸 생각하기는 정말 어렵잖아요.”

 

즉 그녀에겐 완전한 신작이나 다름없단 이야기다. 하지만 세월을 넘어 고전이 가진 감동은 통했다. 엄마찾아 삼만리의 경우 노래 외에도 에밀리오와 수녀님 등 마르코가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 중 상당수를 맡게 됐다. 추억은 없어도 너무 좋았다고 한다. 특히 작품에 처음 투입되던 때 기억은 강렬하다.

 

주인공 마르코를 양정화 선배님이 맡으셨죠. 초반에 이별의 눈물을 흘리던 장면에서 정말 열연하며 우시는데 그만 보고 있던 저까지 터졌어요. 사실 저도 오프닝 곡을 부를 땐 마르코의심정을 담아서 불렀던 터라 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마징가Z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아수라 남작()이다. 닥터 헬보다 더 유명한 전설의 악역, 물론 이 역시 본 적은 없다고 한다.

 

영화 박물관이나 노래를 통해 접한게 다예요. 그치만 로봇의 상징 아닌가요. 잘 준비해야 겠다는 사명감이랄까? 아수라 남작은 캐스팅 전에 어느 정도 제가 맡지 않을까 예상하기도 했어요. 기수 중에서는 제가 비교적 낮은 음역대의 톤이라 맡게 된가 아닐까 해요. 노역도 어느 정도 빈번하게 맡고요. 그런데 막상 작품 속의 아수라 남작을 보니까 또 당황스러운거예요. 첫 인상은 그랬어요. 어쨌든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또 하나의 아수라 남작()인 이창민 성우와 녹음 전날 같이 호흡을 맞춰보기도 하면서 준비했어요. 꼭 녹음장에서 같은 마이크를 쓰기에 더욱 호흡이 중요하죠.”

 

아수라 남작은 어떤 캐릭터로 다가왔나요?”

 

많이 알아봤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어 되려 여쭙고 싶어요. 일단은 어려운 캐릭터죠. 헬박사에겐 자신을 낮추지만 쇠돌이한텐 강단이 있어야 하고, 또 포지선은 악역인데 이런 다양한 것들을 적절히 표현해 내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당당하고 멋있는 여자이기도 하구나 깨달았어요. 군중들 앞에 서서 연설을 하는 장면인데 70년대라면 분명 여성인권이 그다지 신장되지 않았을 시기일 터, 저렇게 한다는 것이 감명있게 다가왔죠. 게다가 간부로서 당당하게 명령하는 포지션이기도 하고 말이죠.”

 

“2004년에 이미 마징카이저가 애니원으로 방영된 적 있어요. 거기선 스승이셨던 김지혜 성우님이 유미 역을 하기도 했고요. 혹시 더빙 전에 찾아보셨나요?”

 

차명화 선배님이 아수라 역을 하셨다고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일부러 안 찾아봤어요. 전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오리지널 TV판의 아수라 남작이 시초란 생각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건 아수라 뿐 아니라 다른 작품 캐릭터를 맡을 때도 동일해요. 플란다스의 개에서 누레뜨 할머니를 맡을 때도 그렇고요. 내 자신의 캐릭터를 흔들리지 않고자 하기 위함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구축된 후에는 찾아봤어요. 확실히 달라요. 새파란 저의 할머니랑 선배님들의 연기는 깊이가 달라요.”

 

그녀보다는 부모님이 더 친숙할 아수라 남작, 5월에 개봉한 극장판 인피니티에서도 아수라 남작은 출연한다. 부모님은 딸이 아수라를 맡은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녀는 내가 알리기도 전에 먼저 두 분이 다 알아버렸다고 한다.

 

남동생이 로봇 광팬이자 성우 덕후예요. 극장에서 작품을 보고선 어 우리 누나가 아수라다하며 엄마 아빠한테 알려준 거예요. ‘45주년 기념작에서 아수라 맡았니?’하고 전화 주시더라고요. 제가 덤덤하게 말하는거 같겠지만 역사적인 작품에다 마징가 월드의 상징적인 캐릭터가 총집결하고 새로운 캐릭터까지 등장하는 화려한 작품이라 많은 생각에 차 있죠. 선배님들은 그런 저에게 어차피 1화에서부터 캐릭터가 완벽히 구축되는 일은 없다고 하세요. 더 나아져 가는 과정이라고 하시죠.”

 

극장판은 5월에 개봉됐고, TV판은 여전히 방영 중이다. 90화를 넘는 대장정이기에 지금도 그녀의 아수라는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 지금의 아수라는 2018년을 살아가는 그녀의 시점에서 다시 탄생한 새로운 캐릭터다.

 

 

 

#성공한 덕후, ‘성우 김승준에게 아직 못한 말 최초 공개!

 

성우가 되어 맘껏 활약하는 것만으로 그녀의 지금 삶을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성공한 덕후란 점을 빼 놓아서는 안된다.

 

사실 제가 어릴 때 성장하며 보았던 작품들은 지금 작품들보다 한 세대 뒤의 것들이죠. 리리카SOS라던가 신의괴도 잔느, 그남자 그여자,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같은 작품들이요. 나의히어로 아카데미아나 오소마츠 6쌍둥이 등은 지망생으로서 꼭 봐야 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죠. 특히 개인적으로는 웨딩피치, 그남자 그여자의 여주인공(미야자와)을 좋아해서, 리메이크작에서 그 역할을 제가 맡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죠?”

 

저랑 비슷해요. 겉과 속이 달랐던 그녀, 저도 한다름하니까요. 전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내면에선 나름 풀어져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1화에서 그녀가 남주인공 지성준한테 킥을 먹이던 마지막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지성준 같은 남자 캐릭터를 만나 보고 싶기도 해요. 그렇게 허영덩어리였던 애가 이후 친구를 사귀고 남을 보듬어주는 모습으로 성장하는 건 제가 이상적으로 그렸던 학창시절 그 자체예요.”

 

지성준이라면, 김승준 성우님이 맡았었죠.”

 

저 그래서 김승준 선배님 좋아해요. 사실 지성준 뿐 아니라 웨딩피치의 케빈, 마법소녀 리나의 제르가디스 등 맡으신 캐릭터들 다 좋아해요. 그러다 드디어 원피스 녹음실에서 만났는데 속으로 꺄아하고 비명을 질렀죠. 심쿵 심쿵한거예요. 아직 선배님한테 못한 말이 있어요. ‘선배님 때문에 난 성우가 됐어요라고.”

 

#10년 후 서른아홉 김은연에게 부친다

 

성우이자 성공한 덕후, 서른도 되기 전 너무 부러운 삶을 쟁취했다. 그럼 그녀의 인생은 이미 다 이룬 삶인가.

 

스물일곱살에 인생의 목표를 이루니까, 정말로 1년 동안은 목표가 사라져서 힘들었어요. 전 목표지향적 인간이니까요. 요즘은 다시 새로운 목표를 가졌어요. 성우로서 모자람을 많이 느껴서 치즈처럼 어디에나 어울리고 익을수록 맛이 더해지는데다 파트너 따라 맛이 달라지는 성우가 되자!’하고 생각해요.”

 

성우 김은연은 성우를 소통이라고 정의한다. 면접때도 그렇게 말했다. 연기는 늘 인물과의 소통이라고.

 

“20대의 김은연이 무대에서 맡았던 인물들은 늘 날카롭고 재수없는 캐릭터, 그런 캐릭터만 왔어요. 내 인생이 그간 날카롭고 똑 부러졌죠. 보이는대로 역할이 오더라고요. 그런데 성우가 되니까 외계인에서 어린이까지 맡을 수 있는 폭이 거의 우주급으로 넓어져요. 그리고 소통은 어느덧 작품 너머와도 이루어져요. 너무 부끄럽고 감사하지만 최근 원피스의 스무디로 인해 팬이 생겼어요. ‘내 덕에 힘을 얻는다고 해요. 그리고 전 인간으로서 주위의 고통받는 이를 그냥 못 보는 성격이라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위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봉사하고 이바지하는 역할을 맡는게 인생 목표이기도 하죠. 성우로서 그 역할까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종장 다시 스물아홉 김은연으로 돌아와

 

저는 노력하고 있는 신인입니다. 팬들의 응원과 사랑이 많은 힘이 됩니다. 그걸 힘이 되는 성우가 되어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꿈이 많은 사람입니다. 성우 외에도 음악가로서 뉴에이지 같은 힐링 가능한 음악으로 소곡집을 내보고 싶고 노래 뿐 아니라 건반, 작곡 등 다양하게 해보고 싶습니다. 한 세상에 태어나 남에게 도움되고 싶고 그러면서 또 내가 하고픈 건 다 해보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전 그 중에서 유독 성우가 좋습니다. 이걸 안했다면 난 어찌 살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아홉은 완전한 열에 한없이 가깝고도 불완전한 숫자라고 한다. 그 불완전함이 불안감이 아니라 무한한 기대일 수도 있음을 스물아홉살 김은연이 알려 준다.

 

 

 

글 사진 권근택 langrisser@naver.com

:
Posted by 빛의목소리

(티저 영상) 마징가Z 인피니티 김은연 성우(아수라 남작 역)가 말하는 "극장에서 더빙판으로 꼭 봐야 하는 이유"






본 인터뷰 기사는 5월 말 업데이트 -

:
Posted by 빛의목소리

<성우인터뷰> 17. 김성연 울고 웃던 10년간의 나의 극회 1기 이야기

 

 

 

 

혹시 우리 일전에 보지 않았어요? 아니, 그 때 말고. 그렇지! 그 때 사진으로 봤어.”

 

놀라운 기억력! 10년 전 사진 한 장에 그것도 단체사진 속에 콩나물 한줄기 마냥 슬쩍 담긴 얼굴을 아직 기억하다니. 게다가 길고 긴 머리칼을 싹둑, 스타일도 확 바꾼 터라 못 알아볼 거라 생각했는데. 초능력자가 아닐까.

기억이라는 게, 생각보다 휘어지기도 깨어지기도 쉬운 것이란 말이지. 이론상 완벽저장이 가능할 거 같은 컴퓨터조차 잦은 고장과 관리로 나중에 찾아보면 꼭 필요한 것들은 사라지고 없는데. 어쩌면 그 비상한 능력도 연기자로서 비장한 카드일지 모르겠다.

 

3년만에 개시하는 열일곱번째 인터뷰, 대원 1기 김성연 성우 이야기를 시작한다.

 

  


  

김성연

2007년 대교방송 성우극회 5기 입사

2008년 대원방송 성우극회 1기 입사

애니메이션

강철의연금술사 브라더후드 리자 호크아이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초시공! 태풍을 부르는 나의 신부 - 다미

기생수 세이의 격돌 이즈미 노부코

달의요정 세일러문 유리/세일러 머큐리, 세라 엄마

드래곤볼 카이 크리링

유유백서 마청(쿠와바라 시즈루)

딸기 100% - 기타오오지 사츠키

매일엄마 분지

미치코와 핫친 마리아, 리리아나, 엘리스, 소년 사토시

소년탐정 김전일 하야미 레이카

우리들이 있었다 타카하시 나나미

내 마음의 비밀 한성수

명탐정 코난 월광소나타 편 임성미

원피스 오리지널 마담 셜리

유희왕5Ds- 루카, 타이가, 바바라

유희왕 zexal 오안나

유희왕 arc-v 형돈, 제이미 오 엄마

이누야샤 완결편 가영이 엄마, 히토미코, 신타 등

케모노 프렌즈 은여우

XXX holic 2모코나

포켓몬스터XY 레나, 삼평

페어리 테일 레비 맥거딘 등

YES!프리큐어5, gogo 밀크, 밀키 로즈, 나유미 등

후레쉬 프리큐어 미키, 지혜 엄마, 왕비

하트 캐치 프리큐어 다역

짜장소녀 뿌까 2

절대가련 칠드런 노와키 호타루, 하나이 치사토, 아카시 아키히

흑집사 마담 레드, 리처드 (이상 대원방송)

뿌까는 못말려 데뷔작(대교방송)

특촬물

가면라이더 덴오 나오미

가면라이더 W 희정, 바이러스 도펀트

가면라이더 위저드 문리나

파워레인저 와일드스피릿 권성 미셸 팽

파워레인저 엔진포스 봄퍼

파워레인저 정글포스 미니/정글 화이트(이상 대원방송)

게임

다함께 차차차2 레이싱걸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나이트엘프 NPC

라디오

데마시안 보이는 낭독회 진행

출강

현 보이스투보이스 방송연기교육원 강사

 

 

이미지 출처 애니박스 홈페이지 - '우리들이 있었다'에서 주인공 나나미를 맡아 사랑을 알아가는 소녀의 심리를 표현해냈다

 

 

대원 극회 1... 울고 웃던 초대 극회의 나날

 

열일곱번째 순번만에 특별한 성우를 만났다. 처음으로 만나는 대원극회 성우다. 잠시 그간의 히스토리를 돌아 보자. KBS 위훈 성우를 시작으로 MBC 채의진 성우를 만났고, 잠시 KBS를 돌고 돌다 투니버스 최승훈 성우를 만나 또 잠시 투니버스를 돌고 돌다 다시 이 극회 저 극회, 그러다 대교방송 윤미나 성우를 만나고 그렇게 각 극회 분들을 만나던 와중에도 대원방송 성우는 없었다.

특별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극회 역사의 첫 장을 연 초대 기수란 점이다.

대원방송이 성우 공채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8, 햇수로 아직 10년이다. 가장 젊은 극회라 역사적인 1성우임에도 무척이나 젊다. 하지만 먼 훗날엔 한 극회의 첫 장을 연 역사적 인물로 남을 그녀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벌써 후배들에겐 원로 성우로서 예우를 톡톡히 받고 있다는데.

 

이번에 8기가 들어왔잖아요. 벌써 5,6기만 해도 나를 무슨, ‘시조새처럼 보는거예요. 1기 타이틀로 원로 취급 받는데 서운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요. 그래봤자 10년도 채 안됐는데. 내 나이가 몇이라고.”

 

인터뷰를 개시하면서 무척이나 궁금했다. ‘전설의 대원방송 1로 두고두고 회자될 그들은 선배도 후배도 없던 그 시절 어떻게 지냈을까.

그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정신 사납게 울고 웃는 버라이어티 리얼 100% 공감 어드벤처 스토리였단다.

 

우리 1기는 정말, 암흑 속에서 시작했달까요. 심하게 말하면 우릴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어라고 자조할 정도였어요. 새 극회가 생기니 견제도 들어오지, 성우 팬들도 이래 저래 여러 이유로 냉담했어요. 게다가 의지할 만한 선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맨 땅에 헤딩하는 환경에다 소문도 안 좋았죠. 타 방송사의 어느 성우 분은 나중에 말하길 난 소문만 듣고서 너네들은 이상한 애들인 줄 알았어라고.”

그 분의 다음 말이 궁금하네요.”

그런 줄 알았는데, 막상 만나보니 뭐야 그냥 정신없는 애들이잖어라고 하더라고요.”

정신이 없어요?”

맞아요. 우리 그랬어요. 우리도 참, 그런 환경이면 긴장도 하고 걱정도 해야 할 텐데 뭐랄까, 이끌어 줄 선배가 없는데다가 1기 친구들 모두가 하나같이 개성적이고 색깔 있는 사람들이라서 모이면 분위기가 재밌달까 정신없달까. 제어가 안되는 분위기죠. 녹음을 할 때도 너무 시끌시끌해요. 해서 신용우 선배님이 같이 녹음하다가 따로 불러서 성연아 이럴 때는 이렇게 대답도 하고 빠릿빠릿하게 해야해 하고 힌트를 주시기도 했죠. 그런데다 또 이 후배들이 눈치까지도 없네, 그래도 와중에 고마운 타 극회 선배님들이 우리 고생한다고 밥 사 주고 챙겨주실 때가 있어요. 그럼 적당히 눈치껏 먹어야 할거 아니야. 메뚜기 떼 마냥 기다렸다는 듯 먹어치우는 거죠.”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리어 매력적인 기수였을 것 같다. 유쾌하고 먹성 좋고, 마치 원피스 밀짚모자 해적단 같잖아. 어디든 초대 기수는 힘들다지만 상상 이상으로 고립무원, 그럼에도 즐거운 분위기였나 보다.

지금도 잊을 수 없어 꼭 밝히고픈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시영준 송준석 안장혁 이장원 최석필로 이어지는 한국성우계의 거물 군단 몬스터 클럽이다. 외모는 몬스터지만 내면은 천사라고.

 

너무 착하고 고마운 선배님들이세요. 이래저래 치이던 우리들이 불쌍하고 안되 보였는지 대원 애들 우리가 챙겨주자하고 나서서 배고플 때 고기도 사서 구워주시고 했죠. 그런데 진짜, 우리들 정말 그 자리에서 3차까지 2백만원어치를 먹어 치웠어요. 그럼에도 선배님들은 와 너네 정말 잘 먹는다 하시면서도 열심히 어여 먹으라시니 이런 분들이 어딨어요.”

 

2기 후배를 맞이하면서 조금은 안정됐을까. 아니었단다. 후배들도 자신들만큼이나 개성이 차고 넘치는 캐릭터였다고. 그러나 그러했기에 대원극회는 민주주의에 대해 더욱 고민하고 또 고민할 줄 아는 모습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다행히 201810년 후 오늘날 대원극회는 8기까지 이어지며 명실공이 대한민국의 어엿한 성우극회로 자리잡았다.

 


 

 

성우 시험 두 번 합격, 대원 1기 김성연 이전에 대교 5기 김성연이었던 아세요?

 

시간을 조금 더 되돌려보자. 성우 김성연의 데뷔작은 대교 어린이TV방송 어린이 생활안전 창작애니 까꾸는 못말려. 대원 1기 이전에 대교 5기 성우 김성연이 있었다. 일생에 한 번 하기 힘든 전속 성우를 두 번이나 했다. 지망생에 있어 정말 정말 정말 능력자다.

 

대교 극회에서는 막내로 귀염받았죠. 좋은 선배 밑에서 살다가 대원으로 옮기게 되니 무척이나 죄송스러웠고 또 받은 사랑만큼 원망도 들었어요. ‘어쩜 니가 이럴수가 있어라고. 그런데 대교 전속 때는 애니메이션을 무척 하고 싶은 거였죠. 책상에다가 일주일에 두 편 이상 애니메이션 더빙하기를 목표 겸 소원으로 붙였을 정도니까요.”

대원으로 오시면서 소원은 푸셨겠어요.”

대원에서는 두 편이 뭐야, 아주 우웩 할만큼 애니메이션이 밀려오는데, 그럼에도 다음 작품 캐릭터는 어떻게 할까 무궁무진한 욕심이 생겨요. 그리고 말한대로 대원 1기로서의 모험이 시작됐죠. 대교에선 막내라 귀염받았었는데 여기선 맏언니에 한 번 성우였던 터라 정반대로 전속임에도 책임감이 크게 느껴졌죠. 맨땅 헤딩하는 기분이었고 앞서 밝힌 대로 익사이팅한 나날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글쎄,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되면 과연 다시 대원 시험을 보았을까 생각도 해 봐요.”

 

 

 

 

마이크 앞에 서기 전 극단 조명 아래 섰던 연극인 김성연은 모르셨죠?

 

시간을 조금 더 되돌려 보자. 어떻게 해서 성우가 되었을까.

 

연극 선생님이 성연이 너 성우되면 좋겠다고 하신 게 처음 의식했을 때였던거 같아요. 근데 정작 나는 그 때 싫다고 했어요.”

 

어릴적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연극을 했고 졸업 후 연극 무대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무대에서의 배우경력은 짧았다고 한다.

 

연극은 무대의 짜릿함이 있죠. 그런데 캐스팅에 제약이 심하고 연극판에서도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친구들이 연출가의 사랑을 받기도하고 무엇보다 외모가 실력보다 우선되는 사실도 회의감을 갖게 해요. 그래도 다 좋았는데, 마침 불황까지 겹쳐서 극단에서의 생활은 1년으로 막을 내렸죠.”

 

그 때가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의 꿈 많은 여대생 시절. 조금은 진로 수정이 필요하던 와중에 어느 친구가 성우 시험을 본다고 알려왔다. 교수님인 송도순 선생님이 권유했단다. 마침 그녀 지도교수님도 성우인 함수정 선생님이었다고. ‘나도 같이 볼래하고 처음 치른 KBS 시험, 아쉽게도 낙방했지만 그 때부터 성우를 목표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결국 내가 원하던 연기자로서 모습은 성우에 가깝더라고요. 연극무대에서 아쉬웠던 것들이 성우의 녹음실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웠어요. 위에서의 것과는 다르지만 성우는 대본을 읽어줄 때 또 다른 감흥이 있어요. 운 좋게 1년 공부하고 대교, 그리고 대원까지 내리 붙었죠.”

연극과 애니 더빙은 많이 다르던가요.”

표현방식은 달라요. 그런데 본질은 같아요. 연극이 자유롭다면 더빙은 세밀해야 하죠. 성우를 무시하는 연극배우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쉽지 않다 이 놈들아하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예요. 특히 시대적 변화까지 따라야 할 시기였죠. 다행히 제겐 이런 도전이 만족감으로 다가왔어요. 할머니 공주 외계인 거기다 지구인 최강 전사 크리링, 남자, 살인마 등 무대 위였다면 언제 제가 이걸 다 맡아보겠어요. 훨씬 자유롭다고 느꼈어요.”

 

 

이미지출처 애니박스 홈페이지 - 강철의 연금술사 브라더후드에서 맡은 리자 호크아이, 신인시절의 대표작이다

 

 

난 광기 넘치는 역 좋아, 연기는 악역이 최고!”

 

대원방송으로 이적 후 데뷔작은 포코냥에서의 여자 2’였다. 초반엔 조용한 역할을 많이 맡았다고. 그러나 과격한 캐릭터가 나오면 마냥 신났다고 한다. 그래서 최애 캐릭을 뽑아 달라니 광기 어린 역할들이 나온다.

 

제 최애 캐릭터는 딸기 100%의 사츠키예요. 거침없는 표현이 좋았던 캐릭터죠. 그리고 유유백서의 시즈루(마청 쿠와바라의 누나). 그런 걸걸한 캐릭터가 좋아요. 시즈루는 참 멋져요. 강철의 연금술사 하면 리자 호크아이를 떠올릴 팬들이 많겠지만 전 거기서 게스트로 나온 소매치기 소녀 역을 했던 것도 좋았어요. 또 있어요. 미치코와핫친에서 토마토를 연구하던 박사, 그 사람은 캐릭터가 슬프고도 나른했죠. 매일엄마의 분지는 늘 행복하고 좋은 캐릭터였고. 나중에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분지랑 닮았어요. 막대기 좋아하는 것도 똑같아요.”

내 마음의 비밀에서 반전 캐릭터도 맡았었죠.”

내 연기에 광기가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준 캐릭터랄까요. 에너지 폭발의 순간이 그 때였나 싶어요.”

묘하게 이중인격, 혹은 알고보니 남자란 캐릭터를 자주 맡는 거 같아요. 특히 코난이나 김전일 같은 추리극에서요. 코난에선 슬픈 소나타 편에서 이후 코난에게 큰 영향을 미친 여장남자 범인을, 김전일에서는 감쪽같이 미녀로 모두를 속인 소년 범인을 맡았죠.”

“PD들 보기에 제 목소리가 거기 잘 맞는다 생각하나 봐요. 그리고 저 역시 연기는 악역이 최고로 재밌어요. 그냥 악역이 아니라 슬픔을 담고 있는 악역을 맡게 되면 전 아주 즐겁게 임해요. 연극무대에서 느끼던 격한 연기의 희열을 여기서 맛보는 거죠.”

 

극회 내에서 그녀가 가진 비공인 타이틀도 소개한다. 이른바 극회 미녀 후배 성우 킬러. 묘하게 극중에서 이들의 역할과 맺어지는 역할성우로 유명하다. 남자 역을 많이 맡으며 가능해진 경사다.

 

우선 드래곤볼에서는 크리링을 하면서 18호를 맡은 ()하영이랑(2) 부부의 연을 맺어 딸도 얻었고, 예쁘기로 소문난 ()보희(2)하고도 커플이 됐고 그래요. 그런데 이거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이미지출처 애니박스 홈페이지 - 매일엄마의 분지를 맡았던 성우 김성연은 이제 어린 아들에게서 그 모습을 본다

 

   

결혼, 육아, 성우까지 바쁘다기보단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시절을 준 삼박자

 

지금 그녀는 말만 들어도 무척 바쁘겠구나 싶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성우로서 최절정에 달한데다 출강도 하고 있다. 게다가 결혼 후 출산에 이어 육아까지, 가정이 있는 몸으로서도 매우 바쁘다.

 

지금이 제 인생 최대의 행복기예요. 연기도 결혼도 육아도 다 행복해요. 사실 제가 세일러문에서 머큐리를 맡을 때가 출산 후라 몸은 고생했어요. 심한 비염에 축농증, 여기에 아이 낳느라 힘도 없어 소리가 안 나오더라고요. 몇 번을 해도, 심지어 나레이션조차 어려워서 성우 그만둬야 하나 우울하기도 했어요. 다행히 시간이 지나 건강도 찾고 나아졌지만요. 몸 관리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순간이에요. 너무 건강을 마구 썼구나 회복 후에 생각했죠. 그리고 다시 행복해졌어요. 아기가 주는 행복감이 힘든 것도 상쇄해주고, 후배들 앞에서 계속 NG나는게 부끄러웠지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또 힘이 났죠.”

아이는 엄마가 성우 연기하는 거 듣고 보면서 좋아하나요?”

처음에 연습하면서 머큐리 파워를 외치면 막 울더니 이젠 뭔지도 모르고 좋아해요.”

  

 


 

기생수에서 케모노프렌즈까지 현재 근황 전합니다

 

지난 2014년 소년만화의 전설로 불리는 기생수가 30여년만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대원방송이 발 빠르게 방영한지 약 3, 그리고 최근 더빙작으로 다시 찾아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첫 화 방영 전 이미 더빙 제작은 마쳤다는 그녀, 디시인사이드 성우갤러리에서 그녀가 맡았던 주인공 신이치의 엄마 이즈미 노부코 역을 호평하는 반응을 알렸더니 고마운 일이라고 한다.

 

예전에 가끔 눈팅? 모니터링 하러 들어가 보고 그랬어요. 최근 데마시안 방송 준비 중에 웹 서칭하다가 간만에 유입됐어요. 뭔가 전보다 다들 표현이 거침없어져 무섭기도 했는데 다행히 좋아해 주신다니 고맙네.”

 

기생수는 이전에도 알고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투자를 받고 제작한 작품이라 더빙 퀄리티가 높다고 자신한다. 어머니 제의가 들어왔단다. 자막판 이후 거의 3년만의 우리말 녹음판이었으나 대원극회를 비롯 KBS 은영선 배진홍 정훈석, MBC 이영란 황윤걸 안장혁, 투니버스 김현심 김광국 등 각 극회의 실력자들이 모여 또 하나의 대원방송 대표작이 만들어졌다. 원작 팬이라면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어머니 역할을 소화하며 그녀의 대표작 목록 또한 업데이트 됐다.

 

그리고 진행자로서의 맹활약.

데마시안 진행에 대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 디시인사이드 성우갤러리 큐베다이스키의 질문

 


  

 

EBS 전해리 성우와 함께 데마시안 보이는 낭독회를 진행 중이다. 그녀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해리 선배랑 정말 즐겁게 작업 중입니다. 작가 없이 두 성우가 섭외, , 진행을 다 하는 동안 힘들기도 하고, 살아있다고도 느껴요. 그리고 재밌고, 신선해요. 잠깐 계속 할지 어떨지 고민도 했는데, 당분간 계속 하려구요.”

 

애니플러스 최초 더빙작으로 소개되는 케모노프렌즈에도 은여우 역할로 그녀 목소릴 들을 수 있게 됐다. 무려 한국 여성 성우만 40인이 투입되는 대작이다. 이 밖에도 넷플릭스의 영 저스티스를 기대하라는 김성연 성우다. 오버히트, 블레이드 소울 등 게임 더빙 및 지자체 홍보 매체를 통해서도 활발히 새해 근황을 알려올 그녀다.

 


  

 

다시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성우 지망생들에 전언, 그리고 성덕이 성우 되는 세상!”

 

이 인터뷰의 독자 중 상당수는 성우를 준비하는 지망생일 터, 그들에게도 한 마디를 부탁했다. 우선 거듭된 낙방으로 나이를 생각하다 한숨지을 이들에게 성우 김성연이 전한다.

 

나이는 핑계 아닐까요? 나도 그런 생각한 적 있어요. 그런데 10년차 성우가 되면서 이제는 바뀌었어요. 무한의 가능성이란 없지만, 또 나이로 인한 영향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사례를 저는 거듭 보아왔어요. 물론 운이란 것도 있겠지만요. 우선 연기에 대해 접근하려면 두 가지를 다 잡아야 해요. 첫째는 인물 감정을 알고 그것이 되어버리는 것, 그리고 그런 와중에 대중성까지 확보해 타인도 이해하는 연기여야 해요. 애니는 판타지예요. 대중들에게 내가 맛본 걸 보여줘야 해요. 내가 울어도 가짜울음으로 전달되면 진정성이 부족한 연기죠. 설령 진짜 울었어도 대중성이 떨어지면 역시 안 와 닿아요. 이게 애니메이션만의 연기일까요? ! 성우 모든 연기에 해당해요. 학원에서 학생들을 보면 열정은 가득한데 상대 전달이 실패하는 걸 보죠.”

그럼 여기에다 애니면 애니, 라디오 드라마면 드라마 그렇게 각 매체별로 특성까지 고려해 맛을 살리면 좋은 결과 기대해도 될까요?”

당연하죠! 그것이 프로의 자격이에요. 그리고, 성덕이 성우 되는 세상! 기생수 주인공을 맡은 ()현욱이도, ()예나도 다 당당한 성덕 출신입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고 따라하고 그런 이들이 후배로 들어오더라고요.”

 


 

 

10년이 지나고 다시 10년을 바라보며

 

2008년 대원방송 공채 1기 성우로 시작한지 딱 10년이 지난 2018, 이제 10년차 성우가 된 그녀에게 미래를 물었다.

 

“10년 지내고 보니 그 10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아무리 많은 작품을 했어도 앞으로 10년간 또 안하면 묻혀버리는 것, 그러니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해야 해요. 안 그러면 죽어버린 연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 좀 번다고, 좀 한다고 게을러지면 결국엔 또 안돼요. 기존 목표가 타인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거였다면 이젠 그런 희망과 판타지에 더해 함께 소통하는 연기의 성우가 되고 싶어요. , 명예, 연차도 다 별 거 아닌거 같아요. 그건 순간일 뿐, 중요한건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소통하며 발전해가는 성우예요. 과거엔 출강하는 것도 힘들게 여겨졌어요. 지금은 가르치는 것에서 기쁨도 느끼고 시험의 피로, 상실감 등 학생들의 그것까지 함께 공유하고 있어요. 그리고, 조금은 제 캐릭터들에 애정을 쏟으려고요. 얼마 전 크리링 인형을 선물받았어요. 생각하니 후배들은 집에 자기 캐릭터 인형을 다 받아서 모아두고 있던데 난 내 것임에도 너무 안 남겨두고 있어 반성했어요.”

 

10년 만에 극회 후배들에게 얻은 시조새 타이틀이 웃기기도 서글프기도 하다. 웃고 울며 한 극회와 함께 성장해 온 사람. 미녀 후배들과 잘 엮이며, 여장남자, 이중인격, 범인, 숨은 최강자(유유백서에서 누나가 마철반이나 요괴들 후드려 패는 거 보면 최강자 의혹이 심심찮게 나온다) 등 온갖 타이틀을 10년 새 다 가진 그녀, 앞으로 10년 동안은 또 어떤 신규 타이틀을 획득할지 기대되는 행보다. 대원방송 성우극회의 역사를 처음부터 지켜봐 온 1기 김성연, 그녀의 역사와 기록은 곧 한 극회의 역사다.

 

 

글 사진 권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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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빛의목소리